DRUNKEN KEVIN

명복을 빌지 마라

2015. 4. 16. 23:43

잡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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날이 지나도 꽃만 놓여 있다면

애도는 이제 그저 꽃일 뿐이다.


(중략)


평온함만이 질서라면

질서는 이제 한낱 위축일 뿐이다.


억울한 죽음은

떠돌아야 두려움이 된다.


움푹 팬 눈구멍에 깃든 원한

원귀가 되어 나라를 넘쳐라.


기억되는 기억이 있는 한

아아 기억이 있는 한

뒤집을 수 없는 반증은 깊은 기억 속의 것.


감을 눈이 없는 죽은 자의 죽음이다.


매장하지 마라 사람들아,

명복을 빌지 마라.


김시종 시인의 시 《명복을 빌지 마라》 中


 무언가를 쓰려고 페이지를 열었다. 어떤 말로 시작을 할지를 도저히 모르겠다. 내가 무슨 글을 쓰려고 글쓰기 버튼을 눌렀는지도 모르겠다. 그런데도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러다가 얼마 전에 본 기사에 인용된 시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. "함께 죽였고 함께 구하지 않았으므로 외면하고 망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." 앞으로도의 4월 16일에는 제대로 웃을 수도 울을 수도 고개를 들 수도 없을 것이다. 아무 것도 하지 않고, 내 삶만 바라보는 나는 결국 가해자와 마찬가지이다. 잊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하면서...


 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사람이라,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라,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... 방관된 권력과 무관심한 다수에 희생당한 그 수많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 수가 없다.


 그래도 말하고 싶다. 잊지 않겠노라고, Remember 2014. 04. 16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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